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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한 방송에 출연해 카이스트에 766억을 기부한 이유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평생 모은 766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며 "내가 평생을 모아서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해 내놓은 돈이다"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어떤 사람이길래 조국의 과학발전과 국력 향상을 위해 이렇게 큰돈을 서슴없이 기부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번 글을 통해 이수영 회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수영 회장 프로필
이수영 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경기 여중,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후, 법대 3학년 때 첫 사법시험에 도전했으나 떨어졌습니다. 그 후, 우연히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을 보고 1963년 서울신문에 입사했습니다.
이렇게 이수영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서울신문 10기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지만, 신문사 내 나 홀로 여기자였던 그녀는 ‘따돌림’을 당했고,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썼습니다. 그 후 그녀는 현대 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에서 기자생활을 이어가며 고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고 이병철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기사를 발굴하면 기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때 이수영 회장은 기자직에서 강제 해직됐으며, 이를 계기로 언론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고 사업가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기자 재직 시절 아버지가 남긴 통장 2개를 밑천으로 안양에 땅을 사서 주말농장을 운영했던 경험을 계기로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트랙터와 돼지 두 마리로 본격적인 목장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국가의 낙농업 장려 정책으로 곧 젖소 10마리를 불하받았으며 목장의 규모는 금방 돼지 1,000마리 , 젖소 수십마리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처음 장만한 목장 부근으로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이 생기면서 목장터 1만1400평 가운데 1만 평이 수용돼 이수영 회장은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되었으며, 이후 우여곡절 끝에 모래채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이 때를 '호시절이었다'라고 회상하며 '모래도 팔고 소도 파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후,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통째로 인수하면서 기자, 목축업자, 모래 판매업자에 이어 부동산 업자로 변신하고 광원산업을 창업한 후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수영 회장 기부
이수영 회장은 일생을 통해 번 돈의 대부분인 766억을 대한민국 과학자의 산실 카이스트 KAIST에 기부하며, 향후 KAIST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총 3번에 걸쳐 카이스트에 기부를 했습니다. 2012년에 80억원, 2016년 10억 원에 이어 676억 원을 기부한 이 회장의 기부금 총액은 766억으로 이 기금은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고액입니다. 이수영 회장이 기부한 기부금은 KAIST ‘싱귤래러티(Singularity) 교수‘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이유는 과학자를 키우는 것이 한국의 국력을 키우는 것이고 한국의 국력을 키우는 것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생각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수영 회장 남편 가족
이수영 회장은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아오다 2018년 서울대 법대 동기생이자 첫사랑이었던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했습니다.
김창홍 변호사는 1935년 생으로 올해 나이 86세입니다. 그는 고등고시(현재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과 서울고검 수석부장을 지냈으며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장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수영 회장과는 2018년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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